화보·글

作事謀始하고 出言顧行하라 했거늘,,

野 人 2012. 12. 4. 22:26

 

네이버 카페에서 우연히 정겨운 글 하나를 발견하여 퍼 왔습니다.

 

(댓글을 남길 수가 없어서..  허락도 없이....)

<혹시 지나시다가 주인장님이 불편하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바로  글 내리겠습니다.>

 

 

 

두류공원에는 구릿한 탕국 처사들이 수없이 모여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있다.

그 爭棋를 보노라면 시간은 유수같다.

직접 대국은 하지 않았지만 수가 꽤나 향상된 것 같아(옆에서 보노라면) 뿌듯했다.

 

집 앞 삼일기원이 있어 실력도 평가할 겸 작정하고 비슷한 기사와 한판 붙어볼 요량으로 들어갔다.

담배연기 자욱한데 쌍쌍이 한 놈 씩 붙들고 판에 여념이 없다.

한쪽 벽에 있는 창호, 세돌이 그림을 보면서 곁눈질로 한 뇜 찾고 있는데

깔끔한 양복쟁이가 다가와 한판 하잔다.

나는 별로 실력이 없다고 슬쩍 빼보았더니 뇜이 적극적으로 달라붙는다.

몇 급이냐고 물었더니 8급이란다.

이에 나는 7급 쯤 될라나 ?  하면서 통성명을 하니 뇜은 일본에 살고 있으며

기원이 저거 삼촌집이라 잠깐 놀러 나왔다고 했다.

 

그러니 뇜과 붙으면 한일전이 되는 모양새다.

한일전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게 아닌가 ?

 

다른 판에서 관전하던 갤러리(?)들이 일본에서 왔다하니 우루루 모여든다.

지금까지 공원에서 남 두는 바둑만 보았지 공개장소에서 그것도 기원에서

관중들을 모아 놓고 한판 하자니 손이 떨렸다.

 

예상외로 선전을 하여 판이 전개될수록 기세가 살아났다.

드디어 한 이십가를 포위해서 죽여놨다.  지금부터 부자 몸조심이다.

잡아 놓은 적군들을 보니 흐뭇하고 대견스럽고 그래서 손이 자꾸 오므라든다.

 

그러나 중반으로 갈수록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했는지 집부족 증에 걸렸다.

무리수를 두니 두는 쪽쪽 사지에서 허둥거린다.

부득탐승, 공피고아, 세고취화, 사소취대, 기자쟁선, 동수상응....

위기십결을 총동원하여도 기마는 퇴로를 차단당하고 여기저기서 아사 직전이다.

결국은 불계패로 7급이 8급이라는 뇜한테 된통을 당하였다.

 

先五十家作必敗라 !

먼저 오십 집을 지은 사람이 반드시 진다는 말이다.

 

아마도 일본 본인방 스타일인가  영 맥을 못 쓰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렇게 서너 판을 연거퍼 지고 나니 뇜이 하는 말쌈,

" 기초가 부실하군요."

이 나이에 어디 부실한 곳이 바둑뿐인가 ?

뇜의 술수에 말려 깸값 내고 부실한 말쌈 듣고, 창호하고 세돌이가 은퇴하라고 쬐려본다.

엉망이 된 기분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바쁜척하면서 기원을 빠져 나왔다.

 

不知彼 -- 적을 모르고

不知己 -- 나를 모르니

每戰必敗 -- 싸움마다 반드시 패배하리라.

은작산 손자의 죽간이 요동한다.

 

(중 략)

 

동네바둑에서 그런 일본 棋道에 심심풀이로 응했으니 오늘의 한일전이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다.

 

자고로

作事謀始하고 出言顧行하라 했거늘,,

'일을 할 때는 처음을 잘 꾀하고, 말을 할 때는 행할 것을 돌아보라.'  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