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책

單行本 打碁集 (단행본 - 가리가네 / 노자와 / 세고에 / 이와모토 / 기쿠치) 모음

野 人 2008. 6. 13. 22:10



 



 

碁   神      道   策

  

13 段의 棋力을 지녔다는 ..   4 世 혼인보 - 前世의 棋聖으로 추앙받는  도샤쿠

 




 


 


 

 

 

 


 


 


3 代에 걸친  坊門과의 惡緣 ~

 

" 내 나이 6 歲 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일 때  불행히도 이 藝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著書  '圍碁妙傳' 의 序文에는  바둑과 그의 인생에 대한 自嘲와 悔恨이 묻어나고 있다.

 

고대하던 名人의 자리에 끝내 오르지 못한 채, 分身이나 다름없었던..

언제까지나 센타로(千太郞)란 兒名을 불러주며 귀여워했던, 愛弟子 인데쓰를 죽였다는 죄책감 ~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밀항을 시도했으나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고..

를 잘못 만났음을 한탄하며..   運의 棋藝論을 펼쳤던 ~

 

메이지의 무라세 슈호와 함께  일본바둑 사상  최고의 傑物로 손꼽히는..


이노우에  11 世 ~    겐낭 인세키  打 碁 集



 



 







 

 

 

나카가와 가메사부로 / 홍인보 슈에이 門下 .   본래의 姓은 岩瀬(이와세).

棋正社(기세이샤)의 総帥로서  院社対抗戦 등에서  홍인보 슈샤이에게 끊임없이 대항하였다.


老軀를 이끌고  棋正社를 떠나면서까지

吳淸源의 十番碁 상대로 기꺼이 나서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고매한 성품으로  슈에이 名人의 寵愛를 받았으나  다무라 호쥬에게 밀려 홍인보家를 계승하지 못하고..

이후 家門을 이탈하며  裨聖会 ,  棋正社 ,  瓊韻社 등

수많은 단체를 세워  宿敵 슈샤이와 맞섰으나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역시 바둑은 勝負인지라  勝負가 뒷받침 되지 못하는 藝道는  설 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棋界의 영원한 非主流로서  격변기에 波瀾萬丈한 삶을 살았던..


가 리 가 네   쥰 이 치     打  碁  選  集

 

 

 

 

 

 

 

 

 

메이지 말기  風雲의 碁客 ,  다이쇼 시대의 棋材 ~   野 澤 竹 朝 .

슈에이 名人의 제자였던 그는  棋風 또한 스승을 닮아  ' 小秀榮 ' 으로  불렸다.


直說과 毒舌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슈사이의 홍인보 계승  祕話를 폭로하며

" 슈사이는 슈에이에 미치지 못한다."  등  슈사이의 심기를 자꾸 건드린다.

 

슈사이의 잇단 경고를 무시하며  마침내 잡지  ' 圍碁評論 '  에서

' 評の評 '  이라는 題로  슈사이 名人의 강평을 비평하는  不敬罪 (?) 를  저지르게 되고..

이로 인해  슈사이의 瞋怒를 사게 되면서  결국은 슈사이의 홍인보家 계승과 동시에

破門을 당하며  段位까지 몰수 당하는 불상사를 겪은 인물.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스즈끼와의 院社對抗戰 十番碁 도중 사망하는 비운을 맞는다.

 

野    澤      精    局    集

 

 

 

  

  

 




 

 

 

 

瀬  越  憲  作     碁  譜  選  集


소년 吳淸源의 渡日과 後援을 부탁하는  세고에 선생의 청에

정.재계의 거물인 고위 관리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묻는다.


" 장차 그 少年이 일본의 棋界를 휩쓸게 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 "

그의 물음에  세고에 선생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 물론입니다.  技藝에 국경은 없습니다 ! "

 

日本棋院의 출범과 戰後 재건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46 年, 초대 이사장에 취임한다.

평생을 바둑 발전과 보급에 盡力하며..

『御城碁譜』 『明治碁譜』『囲碁百年』『詰碁辞典』『手筋辞典』『作戦辞典』 등..

주옥같은 저작 활동으로  棋士의 본분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선생은 잘 보여 주었다.

 

이노우에, 하시모토, 吳淸源, 쓰기우치, 이요모토 등이  선생의 門下生이다.

現代 棋士로서는 가장 먼저  바둑전당에 獻額되는 영광을 안았다.

 

" 바둑꾼은 비록 반상에서 목숨이 앗겨도 행복한 일이니, 당당히 두어가시게 ~ "

十番碁 도중  위협과 협박에 시달리던  제자 吳淸源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薰   和     選   集

 

1902 年  生 ,  호엔샤의 広瀬平治郎  門下로 入門 .

하시모토와의 원폭 對局으로 유명한..

私財를 털어서까지  棋道를 보급하고자 애썼던..   第  3 ~ 4  代  홍인보.


戰後 ,  일본바둑의 재건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으며  棋道 보급의 先覺者였다.

상파울로, 암스테르담, 뉴욕, 시애틀 등  세계 각지에 설립된 바둑회관은

선생의 사재를 투입한  이와모토 기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돌이 여기저기 산재하는 듯 하나, 그 돌들이 서서히 연관을 지으면서 상대를 압박해 가는..

독특한 棋風의 초반 구상은  '콩가루 뿌리기'  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얻었다.


담담한 성품과는 달리  바둑은 패를 장기로 무척 사납고 매서웠다.

人品과 棋風을 혼동해서는  큰일 날 일이다.


1945 年,  第 3 期 本因坊戰에서 하시모토에게 도전하여  3勝 3敗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후,

이듬해에 두어진 재대국에서  2 連勝하며 하시모토를 일축 ~

第  3 代 홍인보位에 오르며  薰和로 命名한다.


계속해서 처음으로  ' 4戶 半 '  이라는  덤 제도가 도입된 47 年의  4 期 마저  기다니를 따돌리며 連覇 .

73 年에는  72 歲라는 고령의 나이로  名人戰 리그에 입성하는  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왕성한 저작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후쿠이 마사아키가 선생의 門下生이다.



 


한 다  도 오 겐    打    碁    集


히로시마 출신으로  1915 年  生 .   스즈키  門下.

1950 年,  関西棋院의 독립에  하시모토와 함께하였다.


이상한 바둑이었다.  서서히 두면서도 - 상대로 하여금 마음껏 두게 해 놓고도..

육중한 힘을 발휘하며  호각으로 이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둑  !

 

" 저렇게 두어도  바둑이 되는 것일까.."

천천히 두는 것으로는  정평이 나 있는  다카가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다카가와를 납득 시킬 수 없는 바둑이라니..  하아 ~

 

王座戦 ,  十段戦 등에서  타이틀을 획득하였으며..

本因坊戦 - 名人戦  양대 리그에서 활약하며

골리앗 日本棋院을 상대로  힘겹게 孤軍奮鬪하던  関西棋院의 總師 -

하시모토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귀한 존재였다.

 

 

  


 

 

아마  四天王의  원조   기쿠치 선생의   打  碁  集

 

 

 

 

秀   行     百   名   局

 




日 - 中  슈퍼 대항전이 낳은  中國의 英雄  !     철의 수문장  !!


聶  衛  平     囲  碁  名  局  集

 




다 께 미 야    二  /  三 連 星     好   局   集

 





 



本 因 坊   秀  樹      初 期   打 碁 集  <正 樹 の あ ゆ み>


昭 和   5 2  年   /   講 談 社   発 行

 

다께미야 九段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울 무렵 ~ 田中(다나카) 선생과의 만남, 원생 시절,

기다니 도장 입문, 이후 이제 막  그의 바둑이 꽃을 피울 무렵까지의  棋譜와 解説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