芸 の 探 究
불리하지 않은 바둑도 곧잘 던졌으며 상대의 惡手에도 기분이 상하곤 했던 전형적인 浪漫派 .
특히 중반의 收拾과 打開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번뜩였던 변화무쌍한 山部의 바둑은
모든 것이 어려웠다.
" 攻擊과 收拾이라면 나는 무조건 收拾에 걸겠다."
" 쫒기지 않으면 두는 맛이 나질 않는다."
그의 語錄과 행동 곳곳에는 狂氣 어린 표현들이 등장한다.
무카이 가즈오 門下. 기발한 發想과 破格 ~ !!
1950 年, 호시노와 대국한 바둑은 수순이 무려 411 手에 달하여 最長手数 바둑으로 기록되어 있다.
狂人 으로까지 불렸던 天才 ~ 타고난 棋才를 滿開하지 못한 채 ..
가지하라, 후지사와 선생과 함께 戰後派 三羽烏로 기대를 모았으나 ..
" 사카다는 점점 멀어져 간다." 라는 말로 그 아쉬움과 悔恨을 달래며 안타깝게 사라져 간 ..
銀 髮 의 마 술 사 야 마 베 도 지 로
1933 年 入段 . 坊門 출신으로 슈사이 名人의 총애를 받았다.昇段 대회를 통한 日本棋院 최초의 九段 .
강한 맷집을 바탕으로 웬만한 펀치는 개의치 않고 거세게 밀어붙였던.. 가공할 만한 완력과 강펀치의 소유자.
그의 저돌적인 棋風은 덤프트럭에 비유 될 정도였다.
吳淸源과의 十番碁 內傷으로 쓰러진 藤沢庫之助 ~
十番碁에서 막판으로 몰리면서 늘 사직서를 품에 품고 다녔다는 구라노스케 ~
吳淸源과의 3 次에 걸친 十番碁 ~
" 내가 왜 졌는지 모르겠다. 나의 패배를 납득키 위해 다시 두려는 것이다."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日本棋院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吳 九段에게 달려드는 후지사와 구라노스케.
그렇게 멈추기에는 그의 성격이 너무 강했고 또 너무 젊었다.
그러나 그는 互先에서 先相先으로.. 또다시 定先으로 속절없이 밀리고 만다.
日本棋院은 그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아울러 최초의 九段이라는 그 명예와 권위도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이에 그는 53 年, 면목이 없다며 日本棋院에 사퇴서를 제출한 후59 年, '호사이(朋齊)' 란 이름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가 十番碁에서 置數가 고쳐지는 마지노선 만이라도 버텨 냈던 들
그렇게 허망하게 승부세계를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다카가와 九段과는 정반대로 언제나 어렵고 복잡한 길 만을 고집했던 호사이 ~
사카다 선생은 그를 ' 타고난 바둑꾼 ' 이라 표현했다.
吳淸源이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
十番碁에 관한 한 마치 魔神처럼 이겨가는 그의 존재 앞에서 절망하고 자책하며..
또 마냥 작아지며 쓰러져 갈 수 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天才 ~
흉내 바둑의 大 家 - 성난 파도 후 지 사 와 호 사 이
드릴 공격 가지하라 ~ !! 야스리 제메 가지하라 ~ !! 部分 感覚 天下一品 ~ !!
勝敗와 形勢를 떠나 언제나 最善과 最强만을 고집했던.. 求道者.
先生의 이러한 所信과 哲學은 挑戰權이 걸린 重且大한 한판에서도 변함이 없었고..
이로 인해 안타까운 逆轉敗도 유독 많았다.
초대 홍인보, 세키야마 선생 門下로 돌의 형태를 중시했으며 많은 新定石을 만들어 냈다.
'드릴 전법' - '겉돌기 전법' 으로 표현되는 독특한 棋風의 梶原流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골수 팬을 만들어 냈다.
연구회나 해설을 통해 수많은 신조어를 만들어 냈고
또한 ' 森 の 石 松 ' 으로 불릴 만큼 毒舌의 大家이기도 했으며..
기다니 道場을 비롯한 젊은 棋士들에게는 엄격한 훈육 師範이었다.
바둑의 초반을 학문에 비유할 정도로 長考派였던 그는
또 다른 長考의 大家 - 하시모토 쇼지와의 王座戦 대국에서..
두 棋士는 이틀걸이 바둑의 첫 날, 단 9 手만 진행하는.. 長考 전쟁이라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그러면서 했던 말이 '오늘이 승부처였다' 라고.. ㅎㅎ
특유의 毒說과 直說로 座中을 휘어잡으며 항상 팬들과 검토실을 즐겁게 했던 ~
쓰기우치, 야마베 선생과 함께 현대바둑 不運의 三天才로 꼽히는..
드 릴 공 격 가 지 하 라 다 께 오
그의 부친 또한 専門棋士인 겐지 5 段 , 1941 年에 기다니 門下로 입문.
그의 나이 20 살이 넘어서며 가노우, 가다와 함께 戰後派 新三羽烏로 기대를 모았다.
66 年, 巨峰 사카다를 쓰러뜨리며 選手権戰 타이틀을 차지한 후 ~ 4 連覇 !!
이후 選手権戰의 사나이로 불리게 된다.
둔중한 힘을 바탕으로 선이 굵은 공격력을 보여 줬던 腕力의 소유자.
흡사 헤비급 복서의 육중한 펀치를 연상케 한다.
마에다 九段은 그를 ' 해머 펀치 ' 라 칭했고..
야마베 九段은 그에게 12 世 本因坊 ' 丈和의 再來 ' 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棋風과는 정반대로 존경하는 棋士는 슈에이 名人이라고..
' 善 人 原 器 ' 로 불릴 만큼 그의 인품은 덕망이 높았다.
怪 腕 - 해 머 펀 치 오 히 라 슈 조
' 華 麗 ' 라는 표현에는 동감할 수 없다.
새카만 하수의 눈으로는 감히 '함축적 두터움' 이랄까.. '여백의 두터움' 이랄까...
폭풍전야의 '고요한 두터움' 아니면, 비를 가득 머금은 '먹장구름같은 두터움' 은 어떤가..
사치스러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오히려 절제 된 느낌인데..
그래서 '華 麗' 라는 표현은 잘 와 닿지 않는다.
아니다. 모두 다 맘에 들지 않는다.
그는 형언할 수 없는 一流의 두터움을 지녔다.
바로 ' 秀 行 一 流 의 두 터 움 ' 그것일 뿐이다.
本名은 保 (다모쓰), 후쿠다 마사요시 門下.
온갖 奇行과 逸脫 .. 스스로를 경솔함과 실수로 점철된 인생이라며 겸손해 했다.
그러나 바둑판 앞에서는 大道無門의 豪放함과 膝錐之志의 峻烈함을 보여 주었다.
" 선생의 技藝를 고스란히 훔쳐 後世에 전하는 것이 나의 임무다."
大竹 九段이 했던 말이다.
" 나의 技倆으로 사물을 재지 말라."
" 단 한 手 만이라도 後世에 남길 수만 있다면.."
괴 물 후 지 사 와 슈 코
玄玄閣에서 발행한 '日本代表棋士名局選' 의 '藤澤秀行' 편이 바로 이 책을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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