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8 年 10 月, 홍인보 3 世 도에츠는 寺社奉行 가가 영주를 찾아간다.
최근 도에츠의 심기는 불편하기만 하다.
가가 영주는 쇼군의 오른팔, 마츠다이라 영주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고..
마츠다이라는 앙숙인 야스이家의 이에모토, 야스이 2 世 산치를 어릴 적부터 후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홍인보家의 불행이었다.
마츠다이라의 산치에 대한 편애로 인해 홍인보家는 야스이家의 그늘에 가려 점점 빛을 잃게 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도에츠는 불편한 심기를 억누르며 금년 오시로고에 관한 절차를 확인하고자
가가 영주를 찾아간 것이다.
" 와줘서 고맙소. 마침 그대와 의논할 일이 있었소."
" 무슨 일이신지요 ? "
작달막한 키에 비대한 몸집의 도에츠는 승복이 몸에 착 달라붙어 마치 오뚝이처럼 보인다.
" 금년 오시로고에 관한 일인데.. 이번에는 그대가 산치와 두었으면 좋겠소.
산데츠는 도사쿠가 상대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 "
" 좋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도에츠는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자신은 스승 산에츠와의 소고 이후 半隱居 상태에 돌입한 52 歲의 老軀 산치를 상대하고
日就月將의 도사쿠가 산데츠를 쓰러뜨린다면 ~~ 이제까지의 구도는 완전히 역전될 것이 아닌가..
문제는 칫수인데....
도에츠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靑天霹靂 같은 가가 영주의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 이번에 야스이 산치를 메이진고도코로에 임명하라는 분부가 계셨소.
따라서 그대가 定先으로 두게 되는 것이오. 도사쿠 역시 산데츠에게 先으로 두게 될 것이오."
마치 몽둥이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도에츠는
" 글쎄요.... " 란 말만 신음처럼 반복하며..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마땅한 대답을 궁리하고 있었다.
산치의 고도코로 임명도, 定先의 칫수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였다.
" 알겠습니다. 참고 넘어가지요."
" 참고 넘어가다니,, 그게 무슨 뜻이오 ? "
영주의 눈이 날카롭고 광폭하게 빛나고 있었다.
" 내일 모레 있을 오시로고 때까지만 참고 넘어가겠습니다."
도에츠는 이미 몸을 돌리고 있었다. 더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다는 상당히 반항적인 언동이다.
포악한 성격의 가가 영주는 자제심이 한계에 달했지만 오시로고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寺社奉行이라는 책임과 쳬면 때문에 판을 깰 수는 없는 노릇이다.
" 그럼, 잘 ~~ 부탁드립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도에츠는 관아를 나선다.
' 감히 속임수를 쓰다니,, 奉行도 奉行이지만 산치 역시 마찬가지다.
명색이 홍인보家의 이에모토인 자신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고도코로를 결정해 버리다니....
허수아비 취급을 해도 유분수지.. 더구나 칫수도 定先이라니....'
도에츠의 가슴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터질 것만 같았다.
20 日, 에도 城안 깊은 곳 구로쇼인에서 치뤄진 오시로고는 사전의 약속대로
산치와 도에츠 戰은 무승부로, 도사쿠와 산데츠 戰은 도사쿠가 10 여 집이나 이겨
先으로는 도저히 勝負가 될 수 없는 도사쿠의 압승으로 끝이났다.
도사쿠의 압승에 기분이 좋아진 도에츠는 곧장 행동을 개시했다.
아토메 도사쿠를 대동하고 가가 영주를 찾아간 것이 27 日.
가가 영주는 동료 寺社奉行인 오가사하라 야마시로국 영주와 함께였다.
도에츠는 두 사람의 寺社奉行 앞으로 나아가 공손하게 절을 한 후
산치와의 소고를 요청하는 서면을 제출한다.
그곳에는 소고를 원하는 이유가 단호하고도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勝負에서 이긴 者가 메이진고도코로로 지명되어야 하는 것은 先代 산에츠와 산치 사이의 전례에
비추어 봐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인보家의 당주인 자신과 단 한번의 對局도
치르지 않은 산치의 고도코로 취임은 승복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임명된 것이 사실이고 이를 거역할 수 없다면
자신은 이제 산치와의 爭碁를 신청할 수 밖에 없다.
대국조건은 산데츠, 지데츠가 산치와 자신에게 똑같이 先相先이므로 산치와 자신은 당연히 互先이다.
이상이 신청서 대략의 줄거리였다.
신청서를 읽는 가가 영주의 표정이 붉게 물들며 일그러지고 있다.
예상보다도 날카롭고 당돌하다. 도쿠가와 막부정치는 前例政治라 일컬어 질 정도로 전례를 중시하는데,
산치의 碁所 임명 건에 관한 지적은 막부정치에 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했다.
게다가 산치와 互先으로 두겠다는 것은 산치의 碁所 임명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또한 이를 命한 가가 영주 자신에 대한 정면적인 비난인 것이다.
가가 영주는 서면을 오가사하라 영주에게 건네주었으나
그의 응답을 채 기다리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리고 만다.
" 홍인보 ~~ !! 당신은 막부의 명령을 거역할 셈인가 ? "
" 무슨 말씀이시온지요 ? 결코 그런 말씀을 올린 적이 없습니다."
" 이것이 산치의 碁所 임명에 승복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오 ? "
" 명령을 내린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爭碁를 신청하는 것이 아닙니까 ? "
"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산치의 碁所 임명은 상부의 뜻이오.
그것을 놓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 "
영주의 협박에 도에츠는 아예 묵비권을 행사하고 나선다.
이쯤 되면 오히려 몸이 달아오르는 것은 영주의 입장이고
너무나 당당한 홍인보의 태도에 약간은 기세가 꺾인 듯 하다가 영주는 다시 소리친다.
" 홍인보 ~~ 이 청원을 철회하시오."
"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저의 청원을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도에츠는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 들어줄 것이라고 ? 이미 碁所에 임명된 산치에게 爭碁를 신청하는 것이
상부의 뜻을 거스르는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 "
" 이것은 어디까지나 藝道를 지키려는 고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몰아세우기만 하신다면 더이상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 藝道를 지키려는 고집 때문이라.... "
정색을 하고 나오는 도에츠의 당당한 기백에 눌려 어느새 영주의 입에서는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그대의 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고집을 부리다가 산치에게 지기라도 하는 날엔
어쩔 셈이오 ? 산치야 말로 진정한 메이진이라는 명백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는 어찌할 작정이오 ?
이는 공식적인 석상에서 불경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오.
만약 멀리 외딴 섬으로 유배라도 보내진다면 받아들일 각오는 되어 있소 ? "
" 처음부터 각오한 청원입니다. 여기서 산치님과 승부를 벌이지 못한다면 홍인보家 당주로서
지하에 계신 선조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설사 실력이 모자라서 승부에 지고 멀리 귀양을 간다 해도
이 역시 棋士로서의 本分을 다하는 길입니다. 추호의 불만도 품지 않을 것입니다.
귀양이 두려워 싸워보지도 않고 굴욕을 인내하며 安逸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후대까지 치욕으로 남을 것입니다."
홍인보 도에츠는 작정한 듯 단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굳은 각오를 토해내고 있었다.
" 이 사람, 도저히 어쩔 수가 없는 사람이로군."
가가 영주는 갑자기 자세를 허물어뜨리며 큰소리로 탄식한다.
이리하여 도에츠가 제출한 爭碁 청원서는 수리되었다.
1 年에 20 番碁 씩, 3 年에 걸쳐 도합 60 番碁를 命한다는.. 일찍이 없었던 방대한 규모의 大爭碁였다.
대국조건은 산치와 관아의 체면을 감안하여 도에츠의 定先으로 결정되었다.
이 大爭碁의 결과를 요약하자면.. 드디어 도에츠는 1670 年, 第 16 局에서 칫수를 先相先으로
끌어내리는 데 성공하고 계속해서 3勝 1敗로 메이진 산치를 몰아붙인다.
결국 60 番碁는 도에츠의 12勝 4敗 4무를 기록하며 20 番碁 만에 75 年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 勝敗의 결과는 76 年, 산치의 碁所 반납과 함께 棋界 은퇴라는..
야스이家로서는 참으로 불행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홍인보 도에츠는 藝道를 지키기 위해..
棋士의 本分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棋士生命과 家門의 命運을 걸었던 것이다.
日本에서 棋士라는 직업은 일찍이 막부권력과 결탁되어 성립되었고
그 권력의 비호 아래 번영을 누린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棋界는 지극히 권력지향적 습성을 띠게 되었고 그 권력의 지배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碁藝 자체까지 지배를 받는 일은 결코 없었다.
棋士 기질의 源泉은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바로 藝道에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제일 먼저 가시적으로 천명한 것이 바로 홍인보 3 世 도에츠의 목숨을 건 爭碁였다.
다이묘 마저도 쥐락펴락하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던, 막강한 힘을 지닌 절대권력 바쿠후도
藝道를 지키겠다는 棋士의 고집을 꺾을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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