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사이 명인은 외로웠으리.
1937년 본인방 슈사이 명인은 은퇴를 발표한다.
본인방, 그 이름은 일본기원에 양도한다.
앞으로 본인방은 세습되지 않는다.
1938년 6월 26일 대국
同年 12월 4일 오후 2시 42분 終局.
대국자 제한시간 각 40시간
명인 19시간 57분.
기타니 34시간 19분.
8월 명인 입원.
11월 재개.
세상은 변했다.
1861년 어성기가 무너지고 전통적 가문이 몰락하면서 권위는 설 자리를 잃었다.
그 후 1938년까지 78년.
슈사이 명인은 모든 영욕을 다 맛봤으리.
上手나 백을 잡은 기사가 봉수의 권한을 가진 것은 명인 은퇴기부터 사라졌다.
公示的으로 사라졌다.
은퇴기는 여러 의미에서 바둑사의 획을 긋는 상징적이고도 현실적인 경계선이었다.
명인으로서는 身命을 건 도박과 다름 없었다.
승부가 뻔한 도박이지만, 그래도 身命을 건 것이었다.
은퇴기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명인은 명을 달리했다.
저 밝고 밝은 하늘에 어찌 끝이 있음을 알았으랴.
제갈량이 말하길, 五丈原에서
悠悠蒼天 曷其有極
저 유유한 창천에 어찌 끝이 있단 말인가.
悠悠蒼天이라. 詩經에 나오던가.
명인은 외로웠다. 고독했다. 아무도 그의 내면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명인 은퇴기는 명인의 고독한 싸움이었다.
싸움은 무슨 싸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명인 은퇴기가 주는 강박감의 본질에 대해서 기타니 자신은 아마도 몰랐으리.
무의식이 안고 있는 그 무거운 시대의 한계를 그 자신은 아마도, 아마도 몰랐으리.
시대의 변화, 짐작이야 당연히 있었으리.
아니다. 알고 있었으리.
명인의 고독을 함께 하고 있었으리.
다만 바둑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召命으로 알고 두었으리.
바둑 역사상 가장 힘든 대국이 아닐까 한다.
명인 죠와의 吐血之局은 이에 비하면 솜털의 무게 정도에 불과하리.
그 바둑을
本因坊戰全集 別卷이 다루고 있다.
참 냉정하다. 냉정하므로… 인간적이다.
어리석은 냉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안겨주는 감동의 품격이 다르다.
어리석은 냉정은 냉혹하다고 표현한다.
情을 모르는 자, 허상을 잡고 허우적거리리.
情이란 게 현실 세계의 인간성을 이룬다.
문용직 사범님의 반상일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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