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책

本因坊 秀哉 (슈샤이) 全集 (본인방 수재)

野 人 2008. 6. 18. 02:34

  


 

 

 

 

 

 

 

 


 

 

 

 

 

 

 

 



 

昭和 49 年  日本棋院 創立 五十周年 記念出版  /  限定  2,000 組  /  定價  63,000 円

 

              第  一  巻.  -  < 初段 ~ 四段 >  호엔샤의 少年 時代  / 秀栄과의 만남.  140

              第  二  巻.  -  < 四段 ~ 五段 >  四象会(시쇼가이) 時代.  125

              第  三  巻.  -  < 五段 ~ 六段 >  破壊力의 開花.  121

              第  四  巻.  -  < 六段 ~ 八段 >  本因坊 계승 / 일인자의 지위 확립.  119

              第  五  巻.  -  < 八段 ~ 名人 >  名人 位 / 碁界合同에의 胎動.  130

              第  六  巻.  -   < 名 人 >   日本棋院創立 / 院社対抗 ~ 引退碁.  120

 

二 , 三  子局  置碁譜 포함   總 755 局  수록.

 

 

本名은 다무라 호쥬 (田村保壽).    法名은 日温 .

1885 年, 호엔샤로 입문하여  石井千治 . 杉岡榮治郎과 함께  호엔샤의 三小僧으로 불렸다.

1908 年, 8段 昇段과 함께  마지막 世襲 혼인보인  21 世  혼인보에 취임하며  秀哉로 改名한다.

이후,  다른  一流棋士들을 모두  先二  置數 이하로 끌어내리며  무적을 자랑한다.

1914 年,  名人 추대.    수읽기의 達人  !!

 

1926 年  院社対抗戦 - 가리가네와의 대결에서  환상의 솜씨로 완승을 이끌며

' 不敗의 名人 '  이란  찬사를 얻어냈다.

당시 이 바둑의 흥미진진한 하변 전투는  바둑팬들을 열광시키며

요미우리 신문의 판매부수를  단숨에 3배로 올려놓았다 한다.

 

1907 年, 슈에이 名人의 갑작스런 他界는  혼인보家를 한바탕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후계를 정하지 못한 채, 名人의 총애를 받았던 가리가네와  기량을 앞세운 다무라와의 갈등은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되고..

 

마침내 다무라 측은  이미 은퇴한 슈겐의 지지를 얻어내며

그를 잠정적인 20 世 이에모토로 앉히는 데 성공한다.

이에 격분한 가리가네는  家門과 호엔샤, 모두와의 인연을 끊게 되고..

이를 틈타 다무라는  어렵잖게 슈겐의 추천을 받아  혼인보家를 잇게 된다.

 

슈사이가 젊었을 적  나카가와 센지(中川千治)와의 대국에서..

148 手  째를 놓으며  8 시간의 장고 끝에  최후의 반 집 패까지  완벽하게 읽었다는 바둑~

수많은 일화 중에서도  傳說로 전해지며  단연 수읽기의 白眉로 손꼽히는..

바로 그 유명한  '완벽한 수읽기의 한 手'  라는 것이다.

 

물론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얘기고  얼마 간의 과장이 있었으리라.

 

허나 이에 대해  평론가 야스나가 선생은  아래와 같은 견해를 밝히고 있다.

 

" <완벽한 수읽기의 한 手> 는  예로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기에

믿어도 되고 또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사실, 그 진위를 파악하려 해도 막연할 뿐이다.

그러나 그 작업이 조금이라도  後學들의 분발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그 진위 자체를 놓고  曰可曰否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취임 후~  名人의 구시대적 사고와 보수적 權威主義는  곳곳에서 반발을 사게 되고..

그러나 이에 대해 名人은  무차별적 武力行使로 맞선다.

권위에 반발하며 복종치 않고 도발하는 무리들은  가차없이 破門하며

칼을 휘두르는  武力鎭壓을 감행했던 것이다.

 

노자와와 이노우에 고헤이도  그렇게 名人의 칼에 희생되었다.

 

그러나 名人에게도 불행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이와모토의 先番을  3 連勝으로 일축했고..  스즈키, 세고에, 가또 진 등

호엔샤의 巨匠들을 상대로  孤軍奮鬪하던 天才~  吳淸源을 능가하는 棋才를 지녔다던 天才~

名人은  그가 있어 든든했다.


그는 혼인보家의 다음을 이을 材木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 愛弟子, 고기시 소지(小岸壯二)가  그만 26 歲의 나이로 夭折하고 만 것이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바둑史는 전혀 달리 쓰여졌을 것이라고..  史家들은 아쉬워하고 있다.

아울러  세습 혼인보는 계속 이어졌을 것이고  현대바둑의 출범은 미뤄졌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雪上加霜으로  스즈키와 세고에에게 連戰連敗 ~  定先까지 몰리게 되고..

이후 껄끄러운 상대인  스즈키, 세고에와의 對局을 기피하며

名人의 권위를 지키고자 몸부림쳤으나..  그러나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다.

 

時代的 흐름과 요청~  吳淸源을 능가하는 棋才를 지녔다던

愛弟子  고기시 소지의 夭折로 인한  상실감..

고기시 소지가 요절한 마당에는  당시 무서운 기세로 旭日昇天하던

기다니와 吳淸源을 대적할만한 棋材가  坊門에는 없었다.

 

마침내 名人은  혼인보位를 마이니치 新聞社에 양도하는  大決斷을 내리게 된다.

'400 年'  이라는  長久한 세월을 지켜온  世襲 혼인보가  終末을 고하는 순간이었으며..

現代바둑의 새로운 場이 열리는  장엄한 순간이기도 했다.

 

 

 

 

 

 

 

 

 

 

億劫의 무게를 안고 두었을  기다니와의  6 개월에 걸친  引退碁 ~

결국  이 바둑은  名人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니  이 바둑이  名人의 목숨을 조금 더 연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정해진 勝負를  확인하기 위해~

 

그것은 기다니 개인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새로운 時代와의 싸움이요  거칠게 밀어닥치는 潮流와의 싸움이었다.

 

병든 몸을 이끌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을 불사르는  名人의 鬪魂  !

그 앞에서  3 시간 반  씩  장고를 해대가며  名人의 진을 빼는  기다니의 執念  !

이 장면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곤 했었다.

 

勝負가 이미 정해진 이 바둑에  왜 名人은 身命을 걸었을까..

아마도 名人에게는  時間이 필요했을 것이다.  확인하는 時間이...

바둑  한 판의 돌을 거둘 때도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400 년의 세월을 거두는 일이 아닌가..


勝負가 뻔한 賭博임을 알면서도..

 

그래서 더 애처롭고 가슴 시리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小說   '名人' 을  볼 때마다

그 메마른 문체가  자꾸 사람을 눈물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權不十年이요~  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갈기를 휘날리며  사바나 대초원을 호령하던  숫사자의 모습~

 

보는 이와 당하는 입장에선  그 무지막지한  앞에  때로는 진저리도 났으리라.

名人의 武力行使 앞에  無力感 또한 수없이 느꼈으리라.

 

그러나 무리에서 밀려나  홀로 상처를 핥으며 죽어가는  英雄의 뒷모습은

언제나 보는 이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무너진 名人의 權威와  온갖 榮辱 ..


400 年을 지켜온  家門의 몰락과  더이상 世襲되지 않는  혼인보~

 

時代의 限界를 바라보며..  단지 확인하는 時間이 필요했을 뿐~~

 

 

 

외 로 운  名 人  -  不 敗 의  名 人    슈 사 이

 

" 한없이 왜소한 체구의 名人이었지만  바둑판 앞에 앉으면 太山같이 커 보였다."

-  吳   淸   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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