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바둑의 빛과 그림자
얼마 전, 히라다 8段이 일본 대표선발전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참 대단하다. 출생 년도가 프로의 야마베 선생과 같았던 것으로 기억하니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 나이로 올해 85 歲가 맞을 게다.
平田博則 - 히라다 히로노리 ~ 그가 누구인가 !
四天王으로 불리며 60 ~ 70 년대를 호령하던 일본 아마바둑의 巨峰이 아니었던가..
유창혁 9段이 입단하기 전, 결승이나 다름없었던 준결승에서 유 9段에게 패한 후
" 내 평생 이같이 강한 아마추어는 처음 보았다." 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바로 그 인물이다.
그 히라다가 반 세기의 세월을 거슬러 21 세기에 또다시 일본 아마바둑을 석권했다니..
하시모토와 후지사와 선생을 능가하는 대단한 노익장이다.
노장의 技藝와 鬪魂에 감탄과 함께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면서도
한편, 日本바둑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듯하여 씁쓸한 마음 지울 길 없다.
프로나 아마나 일본의 젊은 棋士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매우 유감스럽지만, 현재 바둑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물론 藝道와 品格이 궁극도 아니요, 고리타분하게 무작정 과거로 회귀하자는 따위도 아니다.
바둑의 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갖춰 살아남자는 얘기다.
21 세기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바둑쟁이들은 소비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인가..
나는 지금 생존을 위한 절박함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세속적이고도 속물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훈장질도 굶어 가면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얼마 전, 국가 대항전에서 승리한 中國棋士가 돌도 치우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는 기사도 보았다.
상대가 사라진 바둑판 앞에서 敗者인 日本棋士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쯤 되면 禮와 매너가 투전판의 시정잡배 수준이 아니던가..
뒷골목의 양아치만도 못한 무뢰배들한테 얼마나 더 큰 수모와 멸시를 견뎌내려는가...
이런 싸구려 불량품을 소비자에게 팔아먹으려 하는가 ? 과연 그들이 사 주겠는가 ??
이런 질 떨어지는 물건으로 경쟁이 되겠는가 ?
이런 물건 팔아 남는 게 있겠는가 ? 먹고 살 수 있겠는가 ??
이런 양아치들한테 바둑의 미래를 맡긴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기에..
일본바둑이 반드시 강해져야 하는 이유다.
볕이 강하면 그늘 또한 짙은 법이다.
현대바둑을 화려하게 꽃피웠던 만큼 그 책임과 무게 또한 막중한 것이다.
오늘의 이 참담한 사태를 부른 책임에서 일본바둑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일찍이 棋聖 吳淸源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다.
" 바둑수업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手段의 硏究요. 다른 하나는 바로 精神적 修養이다.
전자는 바둑의 기술적 측면을 말함이고 專門棋士라면 누구나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수단만으로는 진정한 名人이 될 수 없다.
정신적 수양이 뒷받침 되지 않는 바둑은 바둑기술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吳淸源 선생이 했기 때문에 名言이 될 수 있었다.
勝負세계에서 20 年이라는 세월을 절대강자로 군림하며 一人天下의 시대를 구축했던 別格의 존재 ~
바로 勝者의 말이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었고 그 정당성과 공감을 얻어 낼 수 있었단 말이다.
그렇다. 바둑은 藝道인 동시에 또한 勝負다. 그 중에서도 眞劍勝負(신켄쇼부)라고 말들을 한다.
치열한 수읽기가 뒷받침 되지 않는 바둑은 아무리 哲學과 美學을 論하고 구상이 좋아도 沙上樓閣 ~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공허함과 무상만이 남지 않던가..
바로 지금 吳 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번 입증 해 줄 필요성이 절실하다.
날뛰는 무뢰배들한테는 일본바둑이 무참하게 무력진압이라도 해 줄 필요성이 있다.
이미 자정능력을 잃은 자들에게 메스를 들이대는 것은 불가피하다.
가치를 갉아먹는 좀비들한테는 몽둥이라도 동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바둑의 정체성과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하시모토가 関西棋院을 이끌고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은
本因坊을 틀어쥔 채 쇼오센쿄의 싸움에서 투혼을 불살랐기 때문이며..
圍棋新社를 결성했던 사카다의 혁명군이 구데타에 실패한 것은
吳淸源이라는 진압군에게 무참하게 패퇴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결국, 승리한 하시모토는 関西棋院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패배한 사카다는 패잔병을 이끌고 日本棋院에 백기.투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승부세계의 생리를 무엇보다 그대들의 역사가 더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또한 高邁했던 인품의 소유자 가리가네는 왜 홍인보家를 계승하지 못한 채
家門을 이탈하여 평생을 변방에서 떠돌아야만 했던가 ?
왜 그가 세웠던 수많은 단체들은 홍인보家에 대적하지 못하고 明滅해 갈 수 밖에 없었는가 ?
이에 반해 똑같이 家門을 이탈했던 슈호가 슈에이로부터 타협을 이끌어 내며
다시 홍인보家의 이에모토로 우뚝 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는가 ?
왜 그가 세운 호엔샤는 400 年 전통의 홍인보家를 능가하며 棋界를 주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훗날 日本棋院의 母胎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는가 ?
藝人 슈에이는 왜 수치심에 치를 떨면서도 타협할 수 밖에 없었는가 ??
모두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그래서 역사가 필요한 것이고..
과거의 가르침을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역사의 평가는 준엄한 것이다.
지금의 棋界와 棋士들을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런지..
겸허한 자세로..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敗者의 미사어구는 궁색한 변명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것이 승부세계의 생리다.
일본바둑 ~ !! 언제까지 藝道와 品格을 위안 삼아 이 수모를 감내할 것인가..
언제까지 藝道와 品格을 팔아 敗北의 아픔을 달래려 하는가...
그것을 남이 해줄 때는 고상하고 아름답고.. 듣기 좋은 칭찬이 되지만
자신의 입으로 내뱉을 때는 한없이 구차해지고 초라해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일본의 棋界와 젊은 棋士들은 자신에게 좀 더 준엄하고 엄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알고 분발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이 수모와 능욕을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지난 날, 사카다 선생이 젊은 오다께에게 했던 진심 어린 충고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또한 슈코의 哲學과 大竹의 美學이 각광 받을 수 있었던 전제조건이 무엇이었는지..
바둑세계에서 勝負를 떠난 藝道가 존재할 수 있었는지...
나 또한 바둑의 기술과 수단보다는 藝道와 品格이 좋고 바둑기술자들을 경멸하지만,
바로 그 藝道와 品格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勝利가 절실하단 말이다.
勝負와 藝道 ~ !! 그 둘이 조화를 이룰 때 棋士는 名人의 찬사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비로소 바둑은 명품이 되고 소비자로부터 제 값을 받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시대와 상황을 초월해서 바둑쟁이들이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바로 ' 바둑의 가치 ' 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바꿔도 좋다.
그것만으로도 명분은 충분하며 나아가 궁극이요 전부이기 때문이다.
생각과 방법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가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변화와 개혁도..
그 누구와도 기꺼이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숙적, 슈호와 슈에이가 대 타협을 이뤄낸 것은.. 슈사이가 자신의 가문을 기꺼이 내던진 것은..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한, 바둑의 가치와 생존을 위한 대승적 차원의 결단이요 안목이었다.
오로지 바둑의 미래만을 걱정한 극도도 냉정하고 절제 된 판단 !
지금 이 시대는 또 한번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技術도 勝負도.. 藝道도 品格도...
결국은 가치를 높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요 방편일 뿐이다.
언제까지 主客을 혼동하는 아둔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인가 ?
무엇이 궁극이고 무엇이 보다 상위개념인지를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천박한 바둑기술자만 넘쳐나는 오늘의 이 불행한 세태 속에서
' 빛 좋은 개살구 ' 또한 결코 아름다운 그림이 되지 못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얄팍한 수단에 치여 藝道를 지킬 수 없었다면 그것은 곧 無能이요 루저이며
결국은 棋界를 양아치들이 판치는 세상으로 만들었다면 그 또한 씻을 수 없는 重罪를 짓는 일이다.
현대바둑을 꽃피운 바둑 선진국으로서, 500 年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바둑 문명국으로서..
수레의 한쪽 바퀴만 굴리는 우를 범하지 말고.. 그에 걸맞는 勝負로...
일본바둑, 아니 死境을 헤매는 현대바둑의 活路를 열어 주길 염원한다.
옆동네는 아예 뿌리와 영혼을 팔아먹은 바둑이기에 더이상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한 바둑팬이 ' 앞으로는 한국바둑을 저주하며 살겠다.' 라는 말을 남기며 떠난다 했는데..
나는 저주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무릇 제 밥그릇을 차는 놈한테는 동정도 아깝다 했다.
일본바둑도 한쪽 바퀴가 삐걱거리며 병든 지가 벌써 20 年 ~
꽃과 잎은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 말라 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셈인가..
나는 일본바둑의 저력을 믿는다. 그래도 아직 뿌리는 살아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빨리 움을 틔워야 한다. 시간이 없다.
덧없고 야박한 것이 세상 인심이다. 팬들은 그리 오래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싹을 틔우지 못한다면 저 나무는 죽었다고 생각하며 등을 돌릴 것이다.
누구네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마는 것이다.
아직 뿌리가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변화와 개혁이란 이름으로 활로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500 年 전통이 이토록 쉽게 무너진다면 너무도 허망한 일이 아닌가..
그대들이 藝道라 숭상해 왔던 바둑을 세상은 ' 얕고 가벼운 것이었다.' 라고 조롱하지 않겠는가..
그대들의 자존심에 너무 큰 상처가 되지 않겠는가..
오늘 한없이 욕을 보고 있는 바둑을 바라보며..
바둑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 !! 바둑은 수단과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 !!
그렇게 勝負로 입증해 주길..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해 주길 간절히 희망한다.
晩年에 일본바둑의 몰락과 굴욕을 속절없이 바라보며..
사카다 선생과 후지사와 선생은 떠나는 발걸음이 쇳덩이처럼 무거웠으리라.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을 기다니 선생을 그대들은 무슨 낯으로 뵈려 하는가..